스페인을 지키는 97마리의 거대한 투우!

인터네셔널 유럽통신원 0 938

스페인을 지키는 97마리의 거대한 투우!


스페인하면 여러 가지를 떠올린다. 뜨거운 태양, 플라멩코춤, 철판해물밥 빠에야, 리듬있는 밤거리문화, 예술문화의 부자나라 등등.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가져갈 추억들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 이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아마도 무시무시한 뿔을 뽐내는 거대한 투우의 모습일 것이다. 관광코스로 빼놓지 않는 투우경기 관람은 스페인에 와 본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투우경기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풍습 중 하나로 관광객들은 물론 이 나라 사람들 역시 아주 즐기는 문화다. 투우와 투우사들이 벌이는 아슬아슬한 경기의 흐름은 투우사가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경악하기도 하고, 투우사 몸에 닿을 듯하다가 투우사가 지시하는 쪽으로 투우가 정확히 빗겨 지나가는 순간 다행의 탄성을 외치기도 한다. 그래서 투우장을 가면 경기의 한순간도 놓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 투우의 모습은 이 나라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어버렸다. 어딜 가나 투우 모습이 그려진 옷이나 관광품들을 볼 수 있다. 가는 곳곳마다 눈에 띄는 투우그림. 나는 오늘 이 유명한 로고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토로 데 오스보르네(Toro de Osborne)라고 불리는 이 로고.

처음에는 그루포 오스보르네(grupo Osborne) 회사에서 만든 술의 상품 광고를 위해 1956년 제작됐다. 그 후 나무를 재료로 4m 높이의 투우로고상이 제작됐고 이는 선전 포스터와 함께 고속도로 양 옆 주변에 전시됐다. 하지만 나무소재가 날씨 영향으로 오래 가지 못하자, 소재를 금속으로 바꾸게 되고 높이를 7m까지 키우게 된다. 1962년 고속도로 광고표준법이 바뀌면서 이 높이는 그 배인 14m까지 된다. 그 후 1988년 고속도로규정법이 바뀌고 고속도로변의 광고가 금지된다. 그러면서 모든 선정용 포스터는 없어지나 투우상만은 그대로 남겨두게 된다. 1994년 법이 다시 바뀌며 모든 투우상도 없애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시청, 문화단체, 예술가, 정치계와 언론계 사람들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시위를 한다.

그로부터 스페인문화의 큰 상징으로서 투우상의 존재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이때부터 토로 데 오스보르네는 상업적인 광고의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 스페인의 공식적인 대표 로고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나 이때부터 까딸루니아지방에서는 스페인이 아닌 독립된 자치국이라고 부르짖는 까딸루냐 시민들에 의해 그 지방에 있던 투우 로고상이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까딸루니아지방에서는 투우상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이곳 시민들은 그들만의 상징로고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바로 당나귀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을 알리기 위해 그들은 자동차트렁크부분에 투우나 당나귀스티커를 붙인다. 마드리드에 가면 투우 스티커가 그리고 바르셀로나쪽으로 오면 당나귀스티커를 볼 수 있다. 간혹 마드리드에서 당나귀 그림이 보이면 왠지 소외되어 보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스페인사람들은 자기 출신을 고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투우모습에서 보는 당찬 도전과 거대한 힘과는 달리 당나귀모습에서는 소박한 시골냄새가 난다. 이렇게 대비되는 느낌과 의미를 한 나라국민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이 로고는 스페인남쪽 안달루시아지방의 도시 카디스(Cadiz)출생인 마누알프리에또(Manuel Prieto Bentez)에 의해 디자인됐다. 그가 직접 얘기하는 그의 어린 시절 추억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3살까지 보통 아이였다. 그 후 홍역과 함께 기관지 천식에 걸리고 말았고 그때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난 친구들과 같이 나가서 뛰어놀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어딘가에 가만히 앉아서 사물들을 관찰, 비교,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하고 싶다. 하루는 지나가던 당나귀를 보게 됐고 난 그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발이 하나하나가 다르게 생겼네? 발톱 모양도 다 다르고 울퉁불퉁하구나 난 그들의 특성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었다. 난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4살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아주 어린 나이로 병을 얻었지만 그 계기로 예술가로서의 기초를 찾고 다질 수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3살 때 당나귀를 보고 떠올렸던 생각들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고 하니 그날은 아마도 그가 예술가로서의 인생에 첫발을 내놓은 날이 아닌가 싶다.

그 후 그는 13살의 나이로 목수, 시계공으로 그리고 식품점에서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두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17살 때 드디어 그림 공부를 시작하고 전시회를 열며 개인작품을 팔기 시작한다. 학업의 폭을 넓히기 위해 19살의 나이로 마드리드에 도착하게 된다. 장학생으로 추천을 받아왔으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자 일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광고회사로 옮기게 된다. 얼마 후 고향에서 그의 가족들도 마드리드로 오게 되고 그는 가족 모두를 부양하기 시작한다. 그 후 언론협회에서 주최하는 광고 디자인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기 시작한다. 그 외 잡지와 여러 기관을 통해 그의 예술적인 자질은 인정을 받고 그래픽 디자이너 외 메달 디자이너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프로의 길을 걷는다.

그렇게 이 세상에 보여진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 토로 데 오스보르네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로고가 됐으며 앞으로도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현재 스페인의 고속도로 주변에는 모두 97마리의 투우가 망을 보며 나라를 지키고 서있다. 지금 저 벌판에 투우의 모습이 안 보인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스페인에서 이젠 없으면 안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토로 데 오스보르네! 스페인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잡은 투우의 근건한 모습은 영원할 것만 같다.


http://www.international21.com/report/cnt.asp?num=7656&gop=1&sep=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카테고리
  • 글이 없습니다.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14 명
  • 오늘 방문자 122 명
  • 어제 방문자 510 명
  • 최대 방문자 1,134 명
  • 전체 방문자 968,670 명
  • 전체 게시물 6,188 개

관련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