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avo adolfo bécquer(구스따보 아돌포 벡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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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o Adolfo Bécquer(구스따보 아돌포 벡께르)


Rima (스페인 전통 서정적 정형시 형태의 일종)


-¿Qué es poesía- dices mientras clavas -시란 무얼까요- 이렇게 넌 말한다. 너의 푸른
En mi pupila tu pupila azul- 눈동자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 보면서.
¿Qué es poesía? ¿Y tú me lo preguntas? 시가 무엇이냐고? 그렇게 넌 나에게 묻고 있나?
Poesía..., eres tú 시는 ..., 너야.


Por una mirada, un mundo; 한 번의 눈맞춤으로 온 세상을,
Por una sonrisa, un cielo; 한 번 미소지음으로 하늘을,
Por un beso..., ¡yo no sé 한 번의 입맞춤으로... 아, 나는 모르겠네!,
Que te diera por un beso! 한 번의 입맞춤으로 당신에게 무얼 줄 수 있을지는.

Rima XXIII

Hoy la tierra y los cielos me sonríen; 오늘, 온 땅과 하늘이 내게 미소를 지었다.
Hoy llega al fondo de mi alma el sol; 오늘은 태양이 내 영혼을 깊숙이 비추어 주었다.
Hoy la he visto..., la he visto y me ha mirado... 오늘 그녀를 보았다..., 그녀를 보자, .
¡Hoy creo en Dios! 그녀도 나를 쳐다 보았다. 오늘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Rima XVII

Gustavo Adolfo Bécquer의 생애와 작품들.

Bécquer, 그의 본명은 Gustavo Adolfo Domínguez Bastida Bécquer 이며, 1836년 세비야 출생이다. 1847년 화가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가 가장 아끼던 수제자가 Bécquer를 맡아 돌보게 된다. 그러나1854년, Bécquer는 그림을 중단하고, 오로지 문학에 파묻힐 작정으로 마드리드로 이주한다.
그는 생전에는 지금과 같이 빛을 보지 못했다. 현재까지도 그가 낭만주의(romanticismo)시인이었는지, 혹은 초기 모니더즘의 작가였는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그가 삼류 신문에다 글을 기고 하던 초기 작가의 시절은 가난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러다가 1856년에서 1863년까지 그 당시에 유명했던 신문 "La Vanguardia"에서 일하게 된다.
이 기간에 그의 첫 작품인 “Historia de los templos de España" (1857)가 나오지만, 이렇다 할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작품집은 그가 후에 나온 ‘전설들(leyendas)’의 소재와 그만의 문체를 발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겠다. 그의 첫 leyenda("El caudillo de las manos rojas") 는 1857 년에 출판되었고, 마지막 leyenda는 1866 년에 쓰여진 것이다.
1860년도 후반에 갓 탄생한 신문 "El contemporáneo"에서 Galdós, Valera 등과 함께 활동하게 되고, 바로 그때 시인 Augusto Ferrán 과 진한 우정을 맺게 된다. 이로부터 일년 후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같은 해에 "Cartas literarias a una mujer" 와 그의 산문인 스물 두 편의 leyendas중 일곱편이 완성된다. 계속 신문사에서 일하며 산문들을 집필해 나가던 중, 결핵 치유차 스페인 북부지방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내 병실에서 쓴 편지들’("Cartas desde mi celda")의 집필이 이루어진다. 그 해가 끝날 무렵, 보수도 꽤 좋았던 정부소속의 소설 심의원의 회원으로 임명되어 4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이 시기가 바로 Bécquer 가 rimas 를 완성할 무렵이다. 그러나 1868년 그의 원고가 인쇄되기 일보직전에 제 1공화정 혁명이 일어나고, 그 틈에 원고를 분실하고 만다. 그는 가벼운 변화도 허용해가면서 모든 원고를 기억에 의존하여 다시 써내려 가야했으며, 그 원고가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rimas 들이다.
같은 해에 불행했으나 세 아들을 안겨 주었던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고, 셋 중 두 아들과 함께 똘레도로 이주하여, 형인 Valeriano와 함께 살게 된다. 화가였던 형이 1870년 9월에 세상을 뜨자, 이에 크게 상심 하다가 Bécquer도 같은해 12월 27일 형의 뒤를 따랐다. 그의 사망일이 Espronceda와 같은 것은 특이한 일이며, 그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Bécquer가 쓴 rima 의 특성
아직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Bécquer의 시가 후기 낭만파로 분류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초기 모니니즘이 더 적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그의 시들이 모든 자신의 감정을 환희 드러내어 보이지만, 관점을 달리 해서 볼 때 지극히 모더니즘 주의적 이기도 한데에 기인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는 시를 솔직하고 투명하게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음악성, 리듬감등을 살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으며, 이들은 대개 평행주의, 그라데이션등의 효과를 내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다른 특징이라면, 절대로 고유명사나 특정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시인 자신을 지칭하는 yo 와 한 여인을 가르키는 tú, (물론 모든 시들은 이 여인을 향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를 썼다는 것이다.
Gustavo Adolfo Bécquer 의 rimas.
현재까지 84개의 rima가 발견되었고, 이들은 그의 친구들에 의해 출판되어져, "El libro de los gorriones"(참새들의 책)에 실리게 된다. 이로 그가 생전에 그의 시들을 출판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rima 들은 테마에 따라 네개의 시리즈로 나누어져 있고, 로마숫자로 번호 매김 되어져 있다.

이혜경 번역(mercedesle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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