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가 설명하는 포루투칼 역사

mimicha 0 2,410

앙리 데 부르고냐 - 까스띠야 왕인 알폰소 6세의 딸 떼레사와 결혼한다.

테주강과 미뇨강 사이의 영토를 다스리는 영주가 된다.

그러나 그의 소원은 그 영토, 포르투갈렌스를 독립된 기독교 왕국으로 만드는 것.

아퐁수 엔리께 -- 병약한 아이로 태어났으나 훗 날 포르투갈의 태조가 된다.

엄마 테레사와의 전쟁에서 승리.
1128년 포루투갈 건국. S?성당건축1147. 신트라의 모로코 성을 정복하는 것도 그의 업적.

산슈 1세
아퐁수 2세
산슈 2세
아퐁수 3세- 형 산슈 2세 몰아내고 왕좌에 오름.

13세기 십자군 원정의 도움으로 국토회복운동 완성.

1249 파로 정복.

디니스 -- 현명왕. 음유시인인 그는 역시 음유 시인이었던 서자 아폰수 산슈를 편애해 장남 알폰소 4세의
모반을 초래 그러나 왕실의 불화 평정자였던 왕비 산타 이사벨라가 노새를 타고,,,

 이에 오비도 성 재건축해 부인에게 선물로,,,, 코임브라 대학. 포어정착. 땅을 귀히
여겨 소나무 심고 농업장려. 그는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다 하였다.

아폰수 4세-- 궁정 회의에 시민대표 참여. 페스트 창궐, 페스트에 관한 유렵의 변명 7300만 에서 5100만으로
유럽인구 감소, 화장실 조차 없었던 유럽의 왕궁들과 쥐와 더불어 살았던 시민들, 형편 없는 하수 시설과 아구아
수시아, 겹겹이 껴입은 속옷들과 향수, 썩은 고기와 후추가루,까스띠야 왕국의 침략, 정치적 경제적 크리시스

뻬드루 1세 -- 공정왕. 난국타계를 위한 까스띠야 왕국의 공주 꼰스딴사와 결혼,

그러나 공주의 시녀인 이네스와 사랑에 빠져, 왕비는 조용히 수습하려 이네스를 자기
태중의 아이의 대모로 삼아 왕과 이네스에게 정신적 친족관계를 형성시킴으로 그들의 열정을 잠재우려 하나,
출산중 사망. 밀애를 즐기는 왕과 시녀.......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정치냐 사랑이냐

페르난도 1세 -- 미남. 귀족 주앙 로렌수의 아내 레오노르가 언니를 보러 리스본에 왔다가 그만 사랑에 빠져...

 결혼. 이에 시민들 시위. 주모자들 처형.
외동딸만 두고 사망, 외동딸은 까스띠야 왕과 결혼. 까스띠야 왕의 포르투갈 왕권 주장, 병력 투입, 아비스 기사단의 활약, 막강한 첨단 무기,

주앙 1세 -- 대왕. 강력한 해양 왕국으로의 출범, 나침반, 경제적 위기를 해외 식민지 개척으로 만회하려 함,
페르난도 1세의 이복 동생. 아들인 엔리꼐 항해 왕자의 활약.

 태주강 하구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 이탈리아 상인을 거치지 않는 향료 수입 모색.

두아르떼 (1433 -1438) -- 소심왕. 동생 엔리께 항해 왕자의 눈부신 활약.

마데이라와 아소레스. 두아르떼는 선왕들의 해외영토 영토 확장정책에 반대

, 그러나 동생인 엔리께와 귀족들의 주장에 굴복. 아프리카로 원정대 파견.
막내 동생 페르난도는 총대장. 그러나 모로코 군에게 인질로 잡히고. 포르투갈 왕실은 페르난도 대신 세우따를
선택... 페르난도를 선택하는 것은 새망또를 주고 헌 모자를 얻어 쓰는 격이다. 페르난도 사망, 그 후유증으로
6년만에 사망.

아폰수 5세 (1438--1481) -- 6살에 즉위. 14세까지 엄마 섭정. 14세는 성년. 엔리께 항해 왕자의 가장 열성적인
후원자. 앙골라, 모잠비크 등.

주앙 2세 (1481--1495) -- 콜롬부스 의 등장, 포르투갈은 스페인 군대를 만나면 포로로 잡지 않고 물에 쳐 넣었음.
아프리카 우회항로를 독점. 화병으로 사망. 식민지의 원주민들과는 공정하고 평등한 입장에서의 교역을 꿈꾸었음.

 또르 데 실랴스 조약1494.

크리스토발 콜론 - 제노바인. 3가지 조건.

 산타 마리아호들에 실었던 물건. 2개월간의 지루하고 위험한 서향항해.

 선상반란과 엘 살바도르. 원주민들의 노예화와 그들의 반란으로 인한 첫번째 식민자들 몰살.

마누엘 1세 (1495-1521)-- 사촌동생. 왕비 오빠. 왕의 양자. 스페인에서 유태인 추방 명령. 미추방자 사형.
포르투갈 땅에 넘치는 유태인에게 인두세 적용. 가난한 유태인은 노비. 피신한 유태인들은 10만명 정도. 장모님께
잘 보이기 위해 유태인 추방명령. 유태인들은 육로만을 통해 포르투갈을 떠날 수 있다? 스페인의 왕위 계승자인
왕자 후안이 죽자, 스페인 계승 서열 1위가 됨. 부인 이사벨이 이사벨 여왕의 큰딸.

 그러나 두달 후에 부인 사망. 아들 미겔 왕자가 이베리아 반도의 3왕국을 통일 할 계승자로 지목.

 그러나 그도 사망. 그래서 죽은 부인의 막내 동생인 마리아와 재혼. 그녀도 사망. 몇년후 조카딸 레오노르와 결혼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권은 물거품.
그러나 좋은 일, 1498년에 바스꼬다가마 인도 항로 개척. 이전에는 모든 배에 전쟁으로 이골이 난 선원들과 노련한 선장이 탑승

, 그러나 발견 이후 때돈 벌이를 노리는 귀족들로 탑승원들 교체. 마누엘 양식. 1502년 헤로니모 수도원. 1521년 벨렘탑. 1500년 뻬드로 알바레스
인도 패권 잡으러 출항했다가 실수 브라질 발견. 해양 왕국으로서의 절정기. 코메르시오 광장의 왕궁, 르네상스 양식 1505년. 이전에는 후추와 면화 상아를 저장해 놓은 창고가 있던곳. 후추와 개피 향내 만연. 사람들은 까사다미나 궁전이라 불렀음. 미나는 아프리카의 한 항구 도시. 금의 유출지.

주앙 3세 (1521--1557) -- 성스러운 왕.

두자루의 조총과 화약을 일본 도키다가에게.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을 이용, 전국시대 종식, 막부시대 염.
이후 도요토미는 대량의 조총으로 조선 침공- 임진왜란 1592년. 당시 포르투갈 보유 조총은 2500정, 일본은3만정.

설탕-- 15세기까지 약국에서만 판매. 부자와 환자에게 한정 판매 고급 약재 향미료로 취급된던 진귀한 물품.
1530년 부터 사탕수수 경작이 브라질에 유입. 유럽에 판매실시 막대한 수입

담배-- 1500년에 설탕과 함께 브라질에 유입. 따바꼬는 성스러운 풀.

 당시 환부에 바르는 약재. 주앙 니코트라는 사람이 까나리아 여왕의 편두통을 담배로 치료. 이후 니코틴이라는 명칭이 생김.

노예-- 유럽에서는 12세기부터 1차 십자군이 귀환할때 흑인 노예들을 데려옴 포르투갈왕국의 첫번째 노예시장은
라고스. 엔리께 항해 왕자의 업적. 브라질 설탕 산업 유입 이후 흑인 노예사업 활성화.

 16세기 말에는 매년 5천명의 노예수출. 소수의 노예들로는 인도인, 이디오피아인, 일본인이었음.

식민지의 원주민들까지 노예로 전락하자 예수회의 원주민 보호정책에 힘입어 세비스티안 왕때 원주민 자유선언.

1577년 포르투갈인 도밍고스가 조선에 처음으로 들어왔으며, 1561년에 포르투갈인 베르투가 제작한 세계지도에 조선이 나타나 있다.

루이스 드 카모잉시 1524 -- 서사 시인 . 우스 루지아다스는 그의 대표적 서사시. 포르투갈 항해인들의
무용을 바스코다가마를 모델로 노래함.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민족혼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
카몽의 의도. 1547년 북아프리카 세우타 원정대의 군인으로 참전. 그리스도 성체절에 길에서 한 궁정관리와
혀와 검으로 싸움을 벌여 9개월간 감옥생활. 이후 국왕에게 국왕에게 사면받기 위해 인도에서 일을 해야만
했음, 17년 동안. 나는 다음에 올 세대를 위해 조국을 떠나노라-- 인도로 떠날때 그가 남긴 말. 1556년
마카오에서 사망자와 실종자들의 재산관리인으로 일하다 인도로 돌아가 틈틈이 써놓았던 루지다아스의 원고를
가지고 귀국. 1570년 리스본 귀환. 1580년 죽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음.


세바스티앙 (1557--1578)--코끼리왕. 알카사르 키비르 전투에서 패배, 사망. 노련한 선장이 말렸으나 어쩔수
없었음. 젊고 미혼이어서 혈기를 억제 못했음. 후계자 없어 스페인 왕 펠리페 2세가 왕으로 추대.

 왜냐하면 펠리페 2세의 보호 아래 해외무역을 원했던 귀족들로 인해.
펠리페왕조 이전 엔리케가 잠시 섭정. 그는 세바스티앙의 작은 할아버지로 65세 즉위. 포르투갈의 귀족들은
펠리페2세 보호아래의 해외탐험과 무역을 원함.

바다는 스페인 왕의 신발에 장식된 에머럴드요, 태양은 그의 왕관에 장식된 황옥이다. - 당시의 유행어.

주앙 4세 (1640--1656)--펠리페 왕조의 폭정. 시민 봉기.
브라간사 왕조 탄생. 대 스페인 독립전쟁 시작. 20년
이상.

아폰수 6세 (1656-1683)-- 1668년에 영국의 도움으로 평화 협정. 성불구자. 부인이 루이사. 왕대신 섭정. 젊고
야망에 찬 귀족인 까스뗄루를 재상으로 기용. 까스뗄루는 왕비가 왕위를 왕의 동생인 뻬드로에게 넘겨주려는 왕의
적들의 계획을 무산시키려 노력함. 그러나 왕비는 빼드로 2세와 바람. 성불구자에게 불만을 품은 왕비는 오히려
까스뗄루를 해임시키라고 왕에게 강요. 얼마후 결혼 무효를 계속 호소하며 어느 수도원으로 떠나버림. 아무도
알폰소 6세의 주위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결국 왕권을 포기한다는 서류에 서명 강요 받고 한척의 배에 실려
아소레스제도로 유배. 훗날 신트라궁의 구석방에서 하직. 날때부터 불구 겨우 걸을 정도.

뻬드루 2세(1683-1706)-- 형수 루이사와 결혼. 해외 탐험 재개. 부의 축적. 그러나 사치.

주앙 5세(1706-1750)-- 사치의 절정. 프랑스 루이 가문의 사치를 너무나 부러워 했음. 모방자. 왕과 더불어 모든
귀족들도 사치. 태주강의 항구는 리스본의 금을 유럽 다른 나라로 실어 나르는 것 외에는 다른 역할이 없었음.
포르투갈 사람들은 생산이라는 용어조차 몰랐음. 17세기 초에서 18세기 중엽까지 포르투갈에 있었던 유럽대사들의
여러나라의 대사들이나 방문객들이 본국에 보고한 내용에는 포루투갈은 유럽의 미개국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음. 주앙 5세의 가장 큰 업적은 당시 포르투갈의 모든 건물들중 가장 큰 마프라 수도원의 건립. 검은색 대리석을
재외한 모든 재료를 수입. 심지어 건축장의 발판과 노동자들의 막사용 목재도 북부 유럽에서 수입.

 5만 2천명의 건축 인원 동원. 4000평방미터.


조세 1세(1750--1777)-- 재상인 까르발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왕이 한 일은 사냥, 승마,음악회 그밖의 여흥
거리가 전부. 까르발류는 1759년 오레이라스백작으로 1770년에 퐁발후작으로 작위 승격.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 1만채의 건물 무너짐. 지진에 잇따른 홍수 화재 전염병으로 4만명 사망. 1751년 기존 왕실의 화재. 왕실
식구들은 벨렘궁으로 이주. 때문에 대지진에서 목숨을 건짐. 경미한 피해만 입은 알파마지구. 당시 무너진 모습 그대로인 카르무성당.

마리아 1세 + 뻬드루 3세 -- 그는 그녀의 삼촌. 병든 영혼들. 정신박약, 및 착란 증세. 자신의 관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대대적인 사면조치... 그러나 그 중에는 퐁발에 의해 숙청된 귀족들이 사면후 복직되면서
복수를... 퐁발 후작의 부정 재산 축적이 문제... 결국 추방. 1807년 나폴레옹 군대 침공. 문화재와 보물 약탈.
왕실은 당시까지 모아두었던 모든 재화들을 배에 실어 브라질로 도주... 그러나 이는 도주가 아닌 천도다?

 사실 브라질로의 천독계획은 옛날부터 있어... 왜? 적국들이 너무 가까워... 영국은 포르투갈의 어정쩡한 태도에
분개해 선전포고, 스페인과 프랑스는 포르투갈과 브라질을 분할 소유할 것을 협상했던 상황이었기에.1801년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평화의 제후 고도이가 포르투갈 침공. 허나 이는 형님께 잘 보이려는 고도이의 기교에
지나지 않아... 당시 영국을 무시할 수 없고 실세 프랑스의 눈치도 보아야 하는 포르투갈은 고도이의 침공에
대해 비아냥 거리며 말하기를 /고도이, 스페인 정계의 막강한 실력자, 그는 엘바스의 성벽 근처에서 오렌지가
잔뜩 열린 나뭇가지 몇개를 꺽어 전쟁의 영광스런 트로피를 까를로따 조아키나의 어머니요, 자신의 정부인
스페인 여왕에게 가져 갔다네/ 브라질 독립... 분명 브라질 없는 포르투갈은 줄기 없는 나무 뿌리에 지나지
않았다. 뻬드로 4세는 브라질의 초대 황재. 영국의 내정 간섭. 시민들의 혁명. 공화정부 수립.

 옛 왕실을 그리워 하는 포르투갈 국민들. 주앙 6세 불러옴.

주앙 6세(1816-1826) -- 정치 안정. 입헌 군주제

마리아 2세(1826-1853)-- 뻬드로 4세의 딸. 쥬앙 6세 사망후 왕권을 둘러싼 왕손들의 내전. 막강한 배후세력을 가진 마리아 2세에 통치.

폭정. 현법 무시. 시민전쟁(1832-1834)에서 시민들이 승리. 그러나 브라질의 간섭. 다시 혼란.

뻬드루 5세(1853-1861) -- 산업 혁명의 신 기술과 제도 도입. 안정과 발전.

그러나 영국은 노예제도 폐지를 외치며 공격... 왜? 영국은 증기기관이 있으니까. 영국은 노예 교역을 중단하지 않는 지역에 군대를 파견해 세력을
장악했고... 포르투갈은 식민지 뺐기기 싫어 노예제도 폐지.

루이스 1세(1861-1889) -- 아프리카 탐험 강화.


까를로스 1세(1889-1908) -- 1890년 영국의 최후통첩. 산업 혁명 이후의 식민 시장의 필요에 의해. 저항했으나 역부족.

굴복. 포르투갈내의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그의 아들 루이스와 함께 암살. 가벼운 부상만 입었던 왕자 마누엘 2세, 18살에 왕위 계승.

그러나 무능.

마누엘 2세 -- 2년간 통치. 여섯차례나 내각이 바뀜.

1910년 공화주의자들이 혁명 성공. 카톨릭의 수난
1910년... /1.예수회 회원들의 추방과 모든 종교 단체와
수도원의 폐쇄에 관한 법령. 2.초등학교와 사범학교에서
크리스트교리교육의 삭제. 3.결혼 파약의 방법으로 이혼법
제정. 4.법정과 공공활동에서 종교적 선서 폐지/
1911년의 수난... /1.카톨릭의 국교됨을 인정하지 않음.
2.모든 교회들은 사적인 조직체의 결사와 동일시 한다.
3.공화정부는 어떠한 종교 제식도 인정치 않으며, 옹호는
물론 보조금 지급도 하지 않으며 따라서 카톨릭
제식행위에 충당되는 어떠한 부과물이나 교구의 사제에게
주어지는 수당금도 없어진다. 4.옥내에서의 종교 제의는
자유로이 행할 수 있으나 일반 집회, 결사의 법적 조건
아래 예속된다./

1926년 --고메즈의 군사 쿠테타. 군부 독재 체제 수립.
1932년 살라자르수상 임명. 1940년 교황청과의 협약으로
카톨릭의 회복... 1.교회의 권위와 자유로운 운용 보장.
2.카톨릭 제단의 학교 설립 운영. 공립학교에서의
크리스트 교리 이념지도. 3.카톨릭 교회법에 따른 결혼
행위는 이혼 청구의 민사상권리의 포기를 의미한다.

1974년 4월 25일-- 안토니오 스피뇰라장군을 중심으로
무혈 혁명 성공.

1998년 -- 엑스포 리스보아. 사회당의 집권.

http://cafe.daum.net/madrid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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