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광장과 난장이 당나귀 5마리

인터내셔널유럽통신원 0 1,179

빛 바랜 광장과 난장이 당나귀 5마리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45km 정도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은, 아주 작은 동네가 있다. 이름하여 친촌(chinchon). 여기엔 4600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외국관광객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숨겨진 관광명소다.

친촌의 역사는 옛날 스페인의 도시국가였던 톨레도(Toledo)왕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톨레도에 속해 있으면서 로마민족, 고트족, 아랍족의 지배를 받으며 문명을 다듬어가게 된다. 로마민족에 이어 412년부터 고트족의 지배를 받다가 711년 고트족이 아라비아인에게 멸망당함으로써 3세기반동안 아랍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1139년 알론소 VII(Alonso VII)왕에 의해 아랍 통치에서 벗어나 세고비아에 속하게 된다. 근 2000년의 세월을 두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긴 역사를 누리고 있는 도시이다.

우선 마을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 편리하자고 새로 짓거나 바꾼 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 모두가 나무로 만들어져 시간과 함께 색도 다 바랬다. 그 가운데 맥 빠진 듯, 흐릿한 회색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이 이 마을의 대광장이다.

사실 그리 크지 않은 대광장은 15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아주 소박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광장 둘레에는 3층의 건물들이 불균형하게 들어서 있는데, 여기엔 모두 234개의 나무발코니가 놓여있다. 마드리드의 대광장에도 이런 식의 발코니들이 들어서 있지만, 친촌은 이와는 사뭇 다른 소박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 동네 역시 스페인의 풍습대로 매년 투우경기가 열린다. 그때 미리 준비한 이동식 담장을 둘러치면 대광장은 바로 투우장으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전통적인 풍습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보기에 좋았고 그날의 이곳 분위기는 또 어떨지 궁금해졌다. 광장 가운데서 발코니를 올려다보니 투우 경기장의 함성이 드리는 듯하다.

아! 그런데 생전 처음으로 동화책에서만 봤던 당나귀들이 눈에 들어온다. 와...정말 자그마한 키에 일만 하게 생겼다. 당나귀를 보는 것은 스페인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처음 찾은 작은 동네에 와서 이렇게 당나귀까지 덤으로 보는 건 정말 행운이다. 5마리의 당나귀가 광장을 빙빙 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타고 있다. 친촌식 관광수단이다. 그렇게 빙빙 도는 게 하루 생활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웬지 우리가 그들을 이렇게 묶어놓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주인의 지시에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한적한 시골에서 사는 게 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식사 때가 되어 예전의 와인저장소를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털털한 분위기의 식당을 찾았다. 밥도 밥이지만 장소 역시 구경할 만하겠다 하고 들어갔더니 기대대로 역시 달랐다. 깊은 굴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다. 불도 많이 안 켜놔서 어두침침하다. 한국 같았으면 어둡다고 불평이 들어왔을 만도 하겠다. 천장에는 돼지 뒷다리 햄, 여러 종류의 하몬이 주렁주렁 걸려있고 예전에 와인을 만들 때 포도를 갈던 거대한 맷돌도 보인다. 그리고 물론 와인을 저장하는 큰 항아리들도 있다.

스페인에는 이렇게 예전 건물을 그래도 유지하면서 다른 용도로 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인테리어도 한국처럼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다. 있던 대로 그대로 둔다. 부서지면 못을 박고 쟁반의 이가 나가면 붙이고, 색이 바래면 페인트를 다시 칠한다. 그리고 1세기 전의 이곳 사진이라며 자랑스럽게 액자에 넣어 입구에 걸어 놓은 집도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의 이런 모습이 너무 편하고 좋다. 잘 보이려고 겉치레만 요란하게 하는 세상에서 시간과 함께 묻어나는 정스런 떼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메뉴 역시 기대가 됐다. 여러 가지 고기요리가 많이 보인다. 그 중 눈에 띈 요리가 바로 새끼돼지 오븐구이. 이 요리는 수로(水路)로 유명한 세고비아 지역의 전통 음식이다. 이 요리를 먹기 위해 다른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기까지 하니 스페인 대표 요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장소를 보면 밥맛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딱 맞다. 맛 역시 훌륭했다. 보통 식당 음식이 아닌 집에서 준비한 것같이 진한 맛이다.

15세기부터 친촌의 주업은 농작, 목축업이었고 18세기부터는 마늘을 주요작물로 경작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친촌마늘은 가장 좋은 마늘로 잘 알아준다. 마치 한국의 의성마늘이라고나 할까? 또한 20세기 초까지는 돼지도 많이 길렀다고 한다. 그것이 이 마을의 돼지 구이가 유명한 연유다. 또한 17세기부터 만들어 내고 있는 아니스(ANIS)라는 술이 바로 이 마을의 특산물이다. 매년 4월이 되면 아니스와 와인의 축제가 열리고 그 다음 주에는 마늘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그리고 옛 모습의 투우경기까지. 참으로 재미있는 동네다.

그렇게 점심을 즐기고 친촌마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들 아직 점심을 먹고 있는지 밖은 아주 조용했다. 어느 도시를 가나 항상 중앙부에서 볼 수 있는 건 성당이나 교회이다.

이 마을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아순시온교회(Iglesia de Ntra. Sra. de la Asuncin)는 고딕과 바로크스타일로 지어졌다고 한다. 지난 14세기, 거의 1세기나 걸려 지어졌다는 이곳에는 화가 고야작품으로 유명한 병풍 그림이 있다. 그리고 그 가까이서는 독립전쟁 때 훼손됐다가 1713년 복원된 시계탑을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이어지는 골목을 들어가 보니 극장도 보인다. 이름은 황금시대 스페인의 유명한 문학작가 이름에서 따왔다. 1891년에 지어진 로페 데 베가극장(Teatro Lope de Vega). 그리고 작가 로페는 그의 문학작품 중 하나를 이 마을에서 썼다고 했다. 친촌만이 담고 있는 영감에서 쓰여졌을 것이다.

위로 올려다보니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성이 보인다. 1520년까지 백작이 살았다는 이 성은 외부 침략에 의해 손상을 입었다가 그 후 1590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했다고 한다. 그리고 400여 년의 세월이 성 전체를 주름살로 쭈그러지게 했다. 안으로는 못 들어가게 되어 있어 아쉬웠지만 그곳에서 친촌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1974년 예술문화 유적지로 선정된 전통 마을 친촌이 소박한 자연의 옛 모습을 영원히 지키길 빈다.




인터내셔널 유럽통신원

http://www.international21.com/report/cnt.asp?num=7687&gop=1&sep=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Hot
성스러운 바위산, 문세랏
인터내셔널유럽통신원 0
Hot
까딸란 피레네산맥에 오르다
인터내셔널유럽통신원 0
Hot
바르셀로나의 명소, ‘스페인마을’
인터내셔널유럽통신원 0
Hot
모래알 마을의 성 카스테엣
인터내셔널유럽통신원 0
Hot
신데렐라마을 루핏!
인터내셔널유럽통신원 0
Now
빛 바랜 광장과 난장이 당나귀 5마리
인터내셔널유럽통신원 0
Hot
로세스
0
카테고리
  • 글이 없습니다.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14 명
  • 오늘 방문자 123 명
  • 어제 방문자 510 명
  • 최대 방문자 1,134 명
  • 전체 방문자 968,671 명
  • 전체 게시물 6,188 개

관련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