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의 로얄팰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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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의 로얄팰리스

매일 방을 바꿔도 7년이 훌쩍
왕실의 일상이 숨쉬는 왕궁

스페인 왕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마드리드와 아란후에스, 엘 에스코리알의 여정을 쫓아본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네 그것과 조금은 닮은 꼴이다. 삶과 죽음, 생활과 여유…. 그들의 일상이 살아 숨쉬는 스페인 왕궁으로 떠나본다.


■ 마드리드 왕궁

1083년까지 마드리드는 마드리드가 아니었다. 무어인(Moor)의 손에 넘어간 땅이었으니, 스페인의 중앙정부와 왕궁이 자리한 곳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마헤리트라 불리는 이슬람교도의 성채에 불과했던 마드리드는 빼앗고 뺏기기를 반복하는 역사를 증명하듯 1083년, 알폰소 6세에 의해 다시 스페인 그리스도교의 땅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슬람교도의 성채는 그리하여 스페인 국왕의 임시 숙소로, 또 다시 스페인 수도의 왕궁으로 제 모습을 바꾼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왕궁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1734년 크리스마스의 화재는 왕궁은 물론 왕족의 소장품마저 모두 태워버려 왕궁은 제 모습을 바꿀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지금의 왕궁은 1738년에 이탈리아의 건축가 유바라가 착공해 그의 제자인 사케티와 프란시스코 데 사바티니, 벤투라 로드리게스 등이 1764년에 완공한 모습이다.

변화무상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할까. 그래도 한결 같이 지켜온 모습이라면 화려한 왕궁의 면모다. 방, 방, 방. 화려함에 이끌려 이리저리 발길을 옮긴 곳에는 용도를 달리한 방이 끝을 보이지 않을 기세로 늘어서 있다. 왕좌의 방은 물론 아버지를 위한 방, 만찬을 위한 방, 악기를 전시한 방, 음식을 만드는 방 등 용도도 너무나 다양하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위한 방과 동양식으로 꾸민 흡연을 위한 방까지 따로 마련돼 있으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내부 장식은 또 어떤가.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모방해 12개의 모양이 다른 거울로 장식한 왕좌의 방은 이탈리아의 화려한 샹들리에로 더욱 빛난다. 아버지를 위한 방의 샹들리에는 프랑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만찬을 위한 방에는 157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식탁이, 악기를 전시한 방에는 300만달러에 이르는 바이올린이 놓여있다. 음식을 만드는 방에 놓인 펀치를 담는 그릇조차 심지어 런던에서 공수했다.

또 있다. 이 방, 저 방의 벽면과 바닥을 장식한 태피스트리. 너무 많아 눈길조차 주기 힘든 이들은 당시 가장 기술이 뛰어났다는 벨기에의 직공들이 만들어낸 것이 많다. 세계에서 좋다는 것은 다 모아놓은 이곳의 화려함, 놀랍고 또 놀랍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놀라움의 끝이 여기가 아니라는 거다. 마드리드 왕궁에는 2800개에 이르는 방이 있다. 그들 중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방은 50개에 지나지 않는다. 50개의 방을 다 둘러보는 데도 하루가 모자랄 정도니 만약 2800개의 방을 모두 구경한다면 두 달은 족히 걸리는 셈이다. 나아가 방을 하루에 하나씩 옮겨가며 왕궁에 머문다고 가정한다면 꼼짝 않고 7년이이라는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 아란후에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화려한 마드리드의 왕궁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스페인 왕실에서는 도시 전체를 별궁으로 꾸미는 작업을 시작했다. 16세기 중반 펠리페 2세 때 짓기 시작해, 200년이 지난 18세기 후반 카를로스 3세 때 완성한 아란후에스가 바로 그곳이다. 과거, 왕실의 여름 휴양지로 사용됐다는 이곳은 왕궁과 섬의 정원, 왕자의 정원, 뱃놀이 집, 농부의 집 등으로 꾸며져 있다.

세계에서도 알아준다는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방이 줄줄이 이어지는 아란후에스의 왕궁은 마드리드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시 왕족들의 키를 짐작할 만한 귀엽도록 짧은 침대가 자리한 침실과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 두 자매의 방을 본 따서 만든 흡연실 등이 눈길을 끄는 정도다. 사정이 이러하니 왕궁 구경은 잠시 뒤로 미루고 또 다른 여정을 꾸려 본다.

눈길 닿는 곳마다 단아한 정원이 펼쳐지고, 타호강이 조용히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란후에스는 스페인 왕가의 여유가 묻어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닮으려 하지 않아도, 이곳에 서면 그들의 여유가 마음 속에 스며든다.

방법은 간단하다. 푸른 정원의 벤치에 앉아 일상의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고 가로수 길에서 산책을 즐기는 거다. 노천 카페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것도 좋다.


■ 엘 에스코리알

마드리드 왕궁과 아란후에스는 화려하기로 앞뒤를 다퉜지만 필리페 2세가 가장 사랑한 곳은 엘 에스코리알이었다. 영양과다에 의한 통풍으로 죽음을 앞둔 필리페 2세는 자신의 마지막 생을 엘 에스코리알에서 마감하길 원했다. 1598년 7월, 7일간에 걸쳐 마드리드에서 이곳으로 온 그는 그 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둔 그를 태운 가마는 지금까지도 엘 에스코리알의 왕궁에 고이 모셔져 있다.

엘 에스코리알은 1557년 생켕탱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펠리페 2세가 승리를 기념해 지은 궁전 겸 수도원이다. 성당을 중심으로 왼쪽이 왕궁이고, 오른쪽이 수도원인 ㄷ자 형태로 1563년부터 짓기 시작해 21년간 그의 땀과 노력을 바친 공간인 것이다.

펠리페 2세도 그러했지만, 스페인 왕실의 사람들은 이러한 노력의 공간을 사랑했음에 틀림없다. 엘 에스코리알에는 특이하게도 지하에 왕실의 무덤이 있다. 펠리페 2세부터 지금 스페인 왕의 할아버지인 알폰소 13세까지. 차곡차곡 쌓은 지하 무덤의 관 속에는 그들의 뼈 박스가 놓여 있다고 한다.

지하 무덤을 나와 돌아본 왕궁의 모습은 단아하다. 다른 왕궁에 비해 횅한 느낌까지 드는 방에는 겨울 햇살이 유리를 통해 환하게 쏟아진다. 아, 유리. 그러고 보니 당시 귀했다던 유리가 왕궁의 창에 가득하다. 해시계를 통해 시(時)와 월(月)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유리 덕분이렸다.

왕궁과 성당, 수도원을 잇는 길에는 화려한 벽화가 줄을 이어 펼쳐진다. 전투에 승리한 이야기도, 성경의 구절을 담은 그림도 있다. 성당 천장은 루카 조르다노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됐다. 높이 30m의 제단 장식은 에레라의 작품이다.

사실 발길 닿는 곳곳에 작품 천지라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힘들다. 그 중 첼리니의 작품인 십자가에 박힌 예수의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이곳의 도서관 역시 특이한 공간 중의 하나다. 오래 세월을 엘 에스코리알과 함께 한 도서관의 책들은 모두 거꾸로 꽂혀 있다. 이는 종이가 숨을 쉬어 썩지 않도록 하는 작은 배려라고 한다.

스페인 글·사진=이진경 객원 기자 jingy21@hanmail.net
취재협조=대한항공 1588-2001, 스페인관광청 02-722-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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