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께스 - las meninas

에스테반 0 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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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께스 - Las Meninas




이번에는 쁘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Diego Velázquez de Silva(디에고 벨라스께스 데 실바, 1599-1660)의 몇몇 작품들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편견과 선입견이 배제된 상태에서 작품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작품의 이야기를 본인 스스로 읽어내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적절한 작품 감상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경지의 체험을 쉽사리 획득하지 못하므로, '작품을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비평가라 불려지는 전문가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처럼 비평가의 도움을 받아 작품읽기를 연습하는 데에는 벨라스께스의 경우처럼 유명한 화가들만큼 좋은 경우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작품은 수 세기동안 수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읽혀지고 평가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정도 일반화된 작품 읽기법을 쉽사리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 그의 작품들과 함께 기록된 내용들은 제 생각도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 제가 접한 전문가들의 비평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선입견이라 생각치 마시고 어린시절 동아전과와 표준전과를 보면서 학습하셨던 마음가짐으로 편하게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1. Las Meninas(시녀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워낙 이 그림은 서양미술사에서 꽤 유명한 그림인지라, 지금까지도 수많은 비평가들이 엄청난 양의 저서를 통해 그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그러한 작품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던 건 96년 김홍근 교수님의 서반아 문화사 강의에서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왕실화가가 국왕의 삶을 그려놓은 단순한 작품으로 보여졌으나, 교수님의 작품해설을 듣고 나서는 그림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어찌보면 제게 있어 스페인 미술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갖게된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어준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은 감히 제가 하는 대신에, 제게 이 작품을 소개해주셨던 김홍근 교수님의 설명이 더욱더 멋질 것 같아서,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운영하시는 웹사이트(www.phototext.pe.kr)에 게재된 작품설명으로 준비해 보았습니다. 제가 교수님의 설명을 읽으며 이 작품에 매료되었듯이 여러분들도 그렇게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벨라스케스 매트릭스

김홍근

스페인 여행에서 본 그림 하나가 떠오른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2층 중앙 홀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이란 작품.

미술사에서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얼마 전 100명의 현대화가에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을 묻는 설문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아 1등을 차지한 그림이다.

루카 지오르다노는 '회화의 신학'이라 불렀고,
테오필 고티에는 "도데체 그림은 어디 있는거야?"라는
찬사를 붙였다.

원래 그림의 이름은 없었지만, 나중에 학자들이 '시녀들'이라고 붙였다.
그런데, 촛점이 잘못 맞춰진, 재미 없는 이름이다.
중앙의 공주 옆에 있는 시녀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벨라스케스의 '메트릭스'라고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바로 이 그림을 바라보는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 그림에 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본다.

우선 벨라스케스가 원근법의 완성자란 걸 생각하면,
이 그림에 사용된 독특한 원근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고 먼 것은 작게 그리는
기존의 원근법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빛을 이용한 원근법을 구사했다.
이 그림의 공간엔 빛이 한군데서만 들어오는 게 아니라,
세군데서 들어온다.

먼저 오른쪽 커튼이 열려 앞면의 등장인물들을 비춘다.
둘째로, 안쪽의 커튼이 살짝 열려 그 빛이 천장과 뒷벽에 걸린,
독일 화가 멩스의 그림을 비춘다.
그리고 저 안쪽의 열린 쪽문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와,
그 문 밖의 계단과 서있는 남자가 쑥 들어간 듯한 거리감을 준다.
이렇게 빛을 이용한 원근법 구사가 잘 발휘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매력과 비밀은 이제부터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소설에 비유해 보겠다.
이 그림은 1인칭 소설인가, 3인칭 소설인가?

그림 전면에 포진한 마르가리타 공주와 그 일행은 3인칭이니까,
이 그림은 당연히 3인칭 소설이다.
그런데 왼쪽에 붓과 팔레트를 들고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화가 벨라스케스 자신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3인칭 소설이면서, 1인칭 소설도 된다.
실제 소설에서 한 작품 속에 1인칭과 3인칭을 동시에 구사하면,
상당히 헷갈릴 것이다.
문학의 보편적인 장르인 소설에선 1, 3인칭 시점만 있고, 2인칭은 없다.
물론 최근에 중남미에서 실험적으로 2인칭 소설이 시도되었지만,
이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그림은 과감히 2인칭 소설을 시도하고 있다.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상대방을 그림 속에 넣었다는 얘기다.

그 비밀은 거울에 있다.
맞은 편 벽에 걸린 거울로 두 사람이 비치고 있다.
벨라스케스가 초상화를 그리고 있던 왕과 왕비 부처이다.
따라서 스냅사진 같은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자신의 눈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왕과 왕비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을 그렸다는 얘기가 된다.
그림의 시점이 정말 복잡 미묘해진다.

벨라스케스가 마드리드의 왕궁 내에 있는 궁정화가 작업실에서
국왕 부처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귀여운 금발의 마르가리타 공주가 일행을 대동하고 뛰어들었다.
그 일행은 공주 좌우의 시녀들과
개와 재미있게 놀아주는 난장이와 그 뒤의 수녀와 선생님이다.

벨라스케스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스냅 그림으로 그렸는데,
자신이 본 시각이 아니라 국왕 부처가 본 시각대로 그렸다.
그렇게 이 그림은 1인칭, 2인칭, 3인칭을 동시에 구사한 소설이 된다.
평면 속에 이런 다양한 시점을 교묘히 구사해 놓은 화가의 머리가 놀랍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자. 벨라스케스의 야심이 보이지 않은가.
바로크 미술의 모토는 “빈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다.
공허한 인간 마음을 감추기 위해 외부장식을 극도로 추구하던 시대이다.
옷은 레이스가 부풀린 것을 입었고,
그림에선 루벤스처럼 화려한 채색을 추구했으며,
음악에선 장식음을 과장되게 사용했다.
벨라스케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림 속에 치명적인 여백을 마련한다.
자신의 야망을 위하여.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벨라스케스는 진정으로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뒷면만 보이는 저 캔버스엔 무엇이 그려져 있을까?
그림 속에 저런 여백을 끌어온 화가의 숨은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추측해본다.
벨라스케스는 시간을 초월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거라고.
그래서 그는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을 그려왔노라고.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이 저 보이지 않는 캔버스 속에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그 그림 속에서 서로 일원이 된다.
이 그림을 본 당신도 이제 그 가족이 된 것이다.

빛이 들어오는 문밖에 서있는,
검은 옷을 입은 제 4의,
4인칭 인물이 뭐라 말하는 것 같다.
(메트릭스의 요원처럼 옷도 정말 까맣다.)
“벨라스케스 매트릭스에 들어온 당신을 환영합니다.”

출처

http://esteban.pe.kr/bbs/zboard.php?id=spai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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