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비아 우연히 만난 거리의 흥겨운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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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 우연히 만난 거리의 흥겨운 축제

세고비아 하면 그저 기타 하나만 생각날 정도로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선 것은 정오가 막 지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엔 벌써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한낮의 내리쬐는 태양 아래 길거리마다 사람들로 북적대고 카페마다 내놓은 길가의 의자엔 벌써부터 술 한잔과 시끄러운 수다들로 한창이었다.

" 오늘 뭔 날이여? 관광객들은 아닌것 같은데.."

" 스페인 사람들이 원래 그런데잖어. 금요일이니까 그런가봐. "



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풍악소리. 뒤를 돌아보니 거대한 인형들과 악단들이 행렬을 이루며 우리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린 순식간에 떠들석한 퍼레이드와 구경꾼들에 휩싸여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이 성 베드로 축제일이었다. 세고비아의 캘린더에 하루 걸러 하나씩 축제라 그다지 중요한 축제였던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하루종일 여러가지 행사가 도시 곳곳에서 준비중이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흥겨운 축제의 행렬을 만난 것만으로도 즐거웠지만, 진정으로 우리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뭔가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는 저 노란 옷을 입은 사람들! 한쪽의 포장마차에선 쉴새 없이 하몽(돼지 뒷다리), 햄, 치즈, 그리고 바게트 빵을 자르고 있고, 아래에선 그것들을 큰 쟁반에 담아 주변에 얼쩡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뭔가를 받아먹는 경우란 대체로 두가지. 복잡한 대학로 길거리에서 새로 나온 맥주나 음료수 같은 것을 선전하는 도우미 언니들을 만나면 한참을 줄을 서거나 거기서 시키는 게임 뭐 이런거 열나 하고 겨우 하나 받아 먹는 경우. 또는 백화점 시식 코너에서 쑥스러움을 감추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나가면서 스윽 하나 집어먹고는 "하나 살까?" 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얼른 자리를 뜨는 경우. 그래서 이런 어색한 시식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인파를 헤집고 큰 쟁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 즐거운 축제의 한복판에선 누구나 환영받는 존재였다. 누구도 쑥스러워하지 않고 즐겁게 음식과 마실것들을 나누고 있었다. 달란 말을 안했는데도 눈에 띄는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수다스런 언니들이 빵접시를 가지고 와서는 건네주며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로 계속 말을 시키는 거다. 그리고는 연이어 술병을 든 사람들이 지나가며 흔쾌히 병을 건넨다. 한입 먹고는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또 넘기고.... 그렇게 거기 모인 사람들은 음악과 음식과 술들을 나누며 모두 상기되어 가고, 작은 축제의 분위기도 한결 흥겨워 가는 것 같았다.

어찌됐던 간에 공짜로 먹는 음식의 맛은 왜이리 좋은지! 작아도 급히 썰어 상당히 두툼한 햄조각과 치즈를 빵에 끼워 먹으니 가볍게 요기도 되고 인파속을 걸어다니기에도 힘이 났다. 거기다 이사람 저사람 입을 거친 이름 모를 술(아마 사과주인듯) 또한 그 향기로움이 비할 때가 없었다.



저녁이 되자 거대한 수도교와 아름다운 중세의 건물들이 석양을 받아 빛나고, 그 앞에선 낮부터 부지런히 설치한 무대에서 재즈 공연이 시작되었다. 모두 손에 마실것 한잔씩을 든 사람들이 무대 앞에 모여서, 혹은 주변의 거리 카페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박수를 치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아름다운 성을 배경으로 한 자정의 불꽃놀이는 30여분 동안 계속되고, 밤을 잊은 스페인 사람들의 축제는 끝이 없이 계속되었다. 그들을 흥겹게 하는 것은 특정한 축제가 아니라, 뜨거운 태양이 물러나고 시원한 밤이 시작되었다는 그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5개월째, 이젠 새로운 것을 봐도 '그러려니..' 하는 약간 무뎌진 감각 때문에 우리 여행도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오늘은 정말 내가 아시아를 떠나 '유럽'이란 전혀 새로운 공간에 서 있구나 하는 신선함이 느껴졌다. 이러한 자극적인 이질감으로 가슴 두근거리고 흥분되기까지 하는건 단지 이곳이 유럽-다분히 피상적인 동경을 담은- 이기 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이제까지 다녔던 아시아의 여러나라들에서도 우리가 가지지 못했던 아름다운 자연과 풍부한 문화 유산을 보고 감탄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낯선 향기다. 뜨거운 태양아래 떠들석한 축제를 즐기며 사는 스페인 사람들의 밝은 표정과 거리낌 없는 초대. 그 소박한 모습들에 스페인이라는 나라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발산되는 순간이었다.



2001.6. 30. 설마담, still in the m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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