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과 스페인 양국의 역사적 관계는 민간차원이든 국가적 차원에서든 영국, 불란서, 독일, 이태리, 네델란드, 벨지움, 노르웨이, 핀란드 등 다른 주요 유럽국가들에 비해 그 개설시점이 늦은 편이었다.

한국과 스페인간에 공식 외교관계가 수립된 것은 1950년 3월이며 초대대사로 백선엽 주불대사가 초대겸임대사로 1962년에 신임장을 제정했다. 이로부터 8년 후인 1970년 4월에 마드리드 중심가인 Paseo de la Castellana에 상주대사관이 개설되었고 그해 7월에 한국외국어대학 학장을 역임한 최완복교수가 초대 상주대사로 발령받아 신임장을 제정하고 양국간에 본격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스페인을 기준으로 지도상 정반대편인 극동의 같은 위도38도선상에 위치한 한반도로부터 스페인에 대한 우리 한민족의 첫 이민의 장을 연 사람은 애국가 작곡자인 안익태선생님이심은 공식 비공식적으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도 생존해 계신 선생님의 미망인, 로리따 안 여사(2001년 2월 현재 지중해 마요르까섬에 거주)에 의하면 안익태 선생님은 2차대전 중인1943년 Radio Madrid가 주최하는 연주회 지휘차 오셨다 마드리드와 바르세로나에서 지휘활동을 했으며 1946년 마요르까 섬에서 로리따씨와 결혼하고 같은 해에 마요르까 시립교향악단을 설립, 1947년에 애국가를 작곡 발표했다고 한다. 1965년까지 19년간 마요르까 교향악단을 지휘했으며 같은 해 9월 바르세로나에서 타계하셨다고 한다.

안익태 선생님 생전에 교민사에 대한 공식이든 비공식적 기록은 알려진 것이 전혀 없으며 1960년대 초에 유학생과 1960년대 후반에 운동선수, 특히 태권선수들이 태권도 보급목적으로 입국하기 시작한 것이 스페인에 대한 본격적 이민의 시초라고 볼 수 있겠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70년 마드리드에 개설된 상주 대사관이 교민회가 공식적으로 육성되기 시작한 계기라고 보겠으며 Las Palmas는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원양어업회사들이 어업기지로 주둔하므로써 그 기지요원과 가족들 그리고 하선한 선원들이 눌러 앉아 터를 잡기 시작하므로써 본토와는 별도로 교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초창기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세로나를 주축으로 한 본토주재 교민들을 분야별로 대별하면 우선 세 분야로 나누어진다. 첫째, 스페인 문학과 어학공부를 목적으로 온 유학생들이고, 들 째, 태권도 보급을 위한 운동선수들, 그리고 셋 째, 취업차 들어온 병아리 감별사들로 나눌 수 있고, Las Palmas는 원양어업회사들을 중심으로 한 기지요원들과 선장, 기관장, 계약을 마치고 하선한 선원들로 구분된다.

1965년경 유학생들을 주축으로 한인들의 소규모 모임이 시작되었고 1965년 이후 1970년경까지 입국하기 시작한 태권도 선수들과 병아리 감별사들이 대거 입국함으로써 스페인내의 한인규모는 증가일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인들의 증가추세와 세계적 산업발전에 따른 국가간의 자원교환은 자연적으로 양국의 교역량에도 비례하게 되고 이에 따라 1972년에 마드리드에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가 사무실을 개설하게 되었다.

1980년을 전후하여 한국과 스페인 양국은 각기 국내적으로 정치 경제면에서 획기적 전환기를 격게 되는데 한국의 제3공화국 붕괴와 제 4공화국의 등장, 스페인의 수구세력 종말과 젊은 정치리더 휄리뻬 곤살레스(Felipe Gonzalez)가 이끄는 사회당(socialista)의 등장이다. 이와같은 변화속에서 양국의 정치 경제 외교적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게 되는데 1984년 IOC의 서울올림픽개최 결정과 1988년의 성공적 서울올림픽휘나레에 이은 1992년의 Barcelona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양국가와 국민간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상호이해와 인지에 가속을 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인사회의 발전적 추세속에 그간 11명의 공관장(대사)이 교체되었고 4명의 교민회장이 교체되는 가운데 2001년 현재 Las Palmas를 포함한 스페인 총 한인수가 약 4천명에 이르고, 이들이 영유하는 업종 또한 다양해 태권도 보급을 주로한 도장, 도복 제조판매업 및 그 부대업, 각종 무역업, 여행업, 요식업, 식품업, 의류업, 침술 등 한방의료(치료), 방송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한편 30대 초반의 한인 1.5세대들의 현지에서의 사회적 진출 또한 한인사회의 미래를 밝혀 주고 있는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모국기업의 현지법인과 지사, 현지의 유수한 기업에서 자질과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 젊은이들에 대한 기대는 한인사회의 등불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뒤를 이어 사회학, 법학, 이공학, 의학 등에서 학업을 닦고 있는 1.5세대들이야 말로 미래를 밝혀 주는 한인사회의 횃불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제 반세기도 채 안되는 스페인에서의 우리 한인들의 짧은 교민약사, 그 일세대들은 서서히 석양으로 접어들고 1.5세대들에게 자리물림하며 우리의 후손들의 이 사회에서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마음속 뒷받침을 다져야겠다.

 

카테고리
  • 글이 없습니다.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34 명
  • 오늘 방문자 347 명
  • 어제 방문자 570 명
  • 최대 방문자 1,076 명
  • 전체 방문자 769,808 명
  • 전체 게시물 5,679 개

관련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