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로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크며 143평방km로, 인구는 약 70만 9천명이다.
마드리드에서 약 538km 떨어져있다. 해발 12m.

옛날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 교도의 공방전이 무수히 벌어졌던 곳.
구아달끼비르 강을 끼고있는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로서 페니키아인들 시대부터 문명이 있었던 도시로 페니키아인들은 금을 찾아 구아달끼비르 강을 거슬러 올라와 세비야에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다. 나무와 흙으로 도시를 둘러가며 성벽을 쌓았다.
그 뒤를 이어 카르타고 인들이 기원 5세기경 세비야의 주인이 되었다.

로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오면서 세비야는 이베리아 반도의 주요한 로마의 거점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시이저도 두 번에 걸쳐 세비야를 방문했으며 폼페이우스와 대결했을 때 세비야 거주 로마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로마인의 뒤를 이어 비시고도 족이 한때 세비야의 주인이 되었으며 711년 이슬람 인들의 이베리아 진주 이후 세비야는 1248년 다시 기독교인들에 의해 탈환될 때까지 약 500년 이상의 세월을 아랍인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스페인에 아랍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비시고도 왕국의 내분 때문이었다. 처음엔 용병으로 건너왔으나 곧 비시고도 족을 몰아내고 반도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세비야는 1500-1600년대 중남미와의 교역의 중심지로써 황금기를 누렸으며, 중남미의 막대한 금과 은이 세비야를 통해 들어와 한때 '황금의 도시'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1646년에는 세비야를 휩쓸었던 페스트로 전체인구 30만 명중 20만 명이 죽는 참사를 겪기도 하였다.





세비야에서 중요한 세계사적 사건은 1492년 콜롬부스가 신대륙 발견을 하러 떠날 때 세비야에서 출발한 사실이며 마젤란의 빅토리아호도 세비야에서 출발하였다.
세비야는 엑스포와도 인연이 깊은 도시로 1929년 세비야에서 스페인어권 국가들의 엑스포가 열리고 1992년에는 콜롬부스 신대륙 발견 출항 500주년을 기념해서 세계 엑스포가 세비야에서 열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스페인 네 번째의 대도시(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 이어)로 인구 80만 명이며, 올림픽 유치에 한 번 실패했으나 2008년을 겨냥해 계속해서 올림픽 주경기 장을 짓고 있다.
이 곳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며, 세비야는 비제의 <카르멘>, 모짜르트의 <돈 후안>,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등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로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외국문물과의 잦은 교류를 통해 학문과 예술이 발달했다. 세비야의 황금기에는 벨라스케스나 무리요 같은 스페인 회화의 거장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스페인 플라멩코의 본 고장으로 유명한 플라멩코 무용수들과 그들의 공연장인 선술집 형태의 따블라오가 모여 있다. 4월의 성 부활절 축제가 유명하며 지금도 이 지방에는 카르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가씨들이 많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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