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

마드리드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려지는 프라도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1785년 까를로스 3세때 건립하기 시작, 원래는 자연과학 박물관을 만들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고 1819년 11월 19일왕립 부속 미술관으로써 개관한다.

1970년도까지 왕실부속으로 귀족관리들에의해 관리되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국립미술관으로써 문화교육부담당으로 넘어갔다. colection의 양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최고라 할 수 있는데 특히 회화만 3000점이상으로 박물관이라기보다는 미술관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회화외의 500여점에 이르는 조각들, 4000점에 이르는 고야의 판화, 스케치등은 빼놓을 수 없는 프라도 미술관의 중요한colection이다.

작품의 반수 이상이 스페인 화가의 작품이며, 플랑드로 회화(14-16세기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에서 꽃피운 예술) 661점, 이탈리아 회화 453점, 프랑스 회화 157점, 독일 회화 43점 등이 전시되어있다.

프라도 미술관 INFORMATION 34.91.420.2836 THU-SAT 9AM-7PM, SUN&PUBLIC HOLS. 9AM-2PM

HOLS: 1 JAN, GOOD FRI,1 MAY,25 DEC.토요일 오후 2시부터~일요일은 무료입장.  월요일 CLOSE

고야

프라도 미술관이 자랑하는 화가로 작품의 중심은 초상화로 탁월한 기법과 날카로운 심리묘사로 보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까를로스 4세의 가족

수석궁중화가로 정해진 뒤의 첫 작품으로 왕실에 존경심이 없었던 고야의 왕실에 대한 감정이 드러나는 그림으로 벨라스케스의 LAS MENINAS(궁녀들)과 비교되며 왕이 옆으로 비껴서고 왕비가 왕의 중심자리를 차지한 모습과 인물들의 표정이 유머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

 


옷을 입은 마야,옷을 벗은 마야

<마하>의 뜻은 멋있고 인간성이 좋은 사람을 일컫는 스페인어인데 일본인이 번역하는 과정에서 고유 명사화된 것. 그 그림과 관련해 아직도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는데 언제 그려졌는지, 누구인지를 추측하면서 1795년쯤으로 그려졌음을 추측하고 모델도 알바 공작일까? 왕의 정부일까? 고도이 재상의 정부일까 등등 의견이 분분하다.

이 그림으로 인해 검열이 심했던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은 고야를 최초로 종교재판까지 올라갔게 했다.

 


1808년 5월 2일

사회고발성 작품이며 게릴라(스페인 특유의 훈련된 소수인의 기동부대이며 19세기 도처에서 사용. 지세를 잘 아는 사람들로 구성됨)전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한 작품. 1808년 5월 2일 몽크로아 언덕에서 나폴레옹 군대에 항거하여 봉기하는 마드리드 시민을 표현하였다.




1808년 5월 3일

전날있었던 5월 2일에 시민봉기 후 색출된 주동자들이 처형받고 있는 모습으로 그 전날의 용맹성은 없고 가련한 인간의 모습만 보인다. 이 그림들은 역사적 증인이 되는 그림.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사라고자를 고행하며 전쟁의 참상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했다고 함. 이 그림은 인간의 세가지 죽음앞의 형태인 반항,두려음,포기를 표현.

블랙 페인팅

고야는 정신이상이 생기면서 만사나레스 강가 2층집에서 살았으며, 그 집을 '귀머거리 집' 이라 부른다. 블랙 페인팅은 검은빛의 그림인 그의 집 벽에 그린 그림들을 말하며, 이후 그 그림들을 떠서 옮겨 다 놓은 것으로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화풍.


사투르누스


그리스, 로마신화의 내용으로 아들을 물어뜯어 먹는 사투르누스로 잔인하고 비극적이다.









어리석은 자

인간의 몽매성을 표현한 것으로 마치 홀린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경청하는 아낙들의 표정, 예언가의 좋은 말을 들으려 하지만 사실은 이야기를 하는 자는 인간보다 못한 산양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하는 그림.

엘 그레꼬(El Greco, 1541-1614)

그리스 태생으로 원래이름(DOMENICOS THEOTOCOPOULOS)은 부르기 어려워 그리스에서 왔으니 '그리스 사람'이라고 불렀던 연유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되었다.
엘 에스꼬리알 왕궁을 장식할 그림들을 그릴 화가들을 불러모은 펠레페 2세의 궁중화가가 되기 위해 스페인에 왔으나 그 당시 아름답게만 표현을 했던 풍에 맞지 않았던 그레코의 그림은 욍의 맘에 들지 않아 궁중화가가 되지 못하고 똘레도로 정착하여 생활을 한다. 색감이 풍부하며 말년엔 특히 종교화에서 신비로운 영혼이 그려진다. 크레타(CRETA) 섬의 깐디아(CANDIA)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이탈리아에서 보낸 후, 옛 수도 똘레도(Toledo)에서 생애를 보냈으며, 초기 작품은 베네치아파 그 자체이지만 Toledo에서 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는 화풍에 개성이 생긴다. 종교적 정신에 지탱된 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조형과 독특한 빛으로 표현을 완성. 몸통을 기형적으로 길게 그린 것은 신을 향한 위로의 절대적 사랑을 의미한다.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종교화가인 그레코의 몇 안 되는 인물화로서 당시 기사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있다. 가슴에 올린 손의 중지와 약지를 붙였는데 이는 그레코의 그림의 특징이기도 하다.

 

목자예배

 엘 그레코는 프랑드르 화가 화풍이었던 매너리즘(전쟁 후 인간의 정치적, 심리적 불안을 그림 속에 반영, 인간의 감정세계를 표현하는 화풍)화가로 똘레도에서 성서의 내용의 작품들을 많이 그렸으며 그레꼬의 붓터치는 불꽃모양으로 하늘을 모두 행하여 칠해진다. 20세기 표현주의가 생겨나면서 스페인을 방문한 바로크의 천재작가인 마네가 1851년 프라도를 방문할 때 벨라스케스와 함께 발굴되어진다.

 

 

 

 

 



벨라스케스(Velazquez, 1599-1660)

젊은 시절부터 재능을 발휘하여 궁정화가로 활약하였고, 두 번의 이탈리아 여행을 거쳐 화면이 밝아졌고 작품은 냉정하며 감정에 빠지는 일없이 항상 자신의 시각에 충실. 회화의 완벽성을 추구하고<공기 원근법>창시로 그 후 인상파 화가들에게 높이 평가.

 



궁녀들

뒤로 몸을 틀고 있는 사람이 벨라스케스가 이태리에 그림을 사러 갔을 때 동행했던 화가.
거울 속 펠리페 4세와 왕비가 비추고 정면엔 마가렛트 공주, 시녀, 어릿광대를 마치 관객의 입장에서 모습이 거울에 비춰진 것 같다.
수학적인 공식으로 연구되었고 그는 그림에서도 나타나 있는 공기원근법을 창시했다.
궁안의 일상적인 모습으로 마가렛트 공주는 이 당시 빨리 성장하는 병이 들어있었고 이 장면은 시녀가 그녀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물을 가져가 주는 장면이 멈춰 있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그려졌을 당시엔 없었던 벨라스케스의 옷엔 후작을 상징하는 빨간색 핀이 사후에 그를 평가하여 궁중화가로서의 품위를 지키고 결격사유가 없었음을 확인하고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직녀들

그리스, 로마신화의 내용으로 자신이 베짜기 기술이 최고라고 거만했던 아라크네에게 미네르바 여신이 평생 실을 뽑으며 사는 거미로 둔갑하게 저주하는 이야기. 아라크네가 신에게까지 대항했던 거만으로 미네르바는 노인으로 변장해 그녀와 베짜기 시합을 하는 장면으로 아라크네가 짜내는 카펫과 그들이 시합을 벌리는 모습이 보여진다.


주정뱅이들


박카스 신은 술을 못 마시는 군인이 마시게 되는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많은 소재가 되는 내용.



브레딕의 함락(부재: 창)

한 번도 네덜란드에 가보지 못한 벨라스케스가 그린 그림.네덜란드 30년 전쟁이 배경.
여러 가지의 비교를 할 수 있는데 미완성으로 끝난 그림을 벨라스케스의 제가가 완성시킨 것으로 실력비교를 할 수 있으며, 가지런한 승자의 창과 정돈되지 않은 패자의 창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화가

●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
- 수태고지(La Anunciacion)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 Historia de Nastagio degli Onesti

 


● 티치아노(Tiziano, 1490-1576)
- 까를로스 5세(Carlos 5), 펠리페 2세(Felipe 2)의 초상화

● 틴로레토(Tintoretto, 1518-1594)
-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그리스도(El Lavatorio)




● 베로네제(Veronese, 1528-1588)
- 신전에서 박사들과 이야기하는 그리스도(La disputa de Jesus con Los Doctores en el Templo)

플랑드로·독일회화

반데르바이덴
-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Descendimiento)

● 엘 보슈
- 쾌락의 정원(Jardin de las Delicias)

● 브뤼겔
- 죽음의 승리(Triunfo de la Muerte)

● 뒤러
- 아담과 이브(Adan Y Eva), 자화상

● 루벤스
- 동방박사 세사람의 참배(Adoracion de los Magos),아름다운 3신(Las tres Gracias)

● 램브란트
- 자화상, 아르테미스(Artemisa)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Reina Sofia)

원래1965년도까지 병원으로 사용했던 이 건물은 1978년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89년 12000평의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개축, 현재 스페인 소피아 왕비의 이름을 붙여 "MUSEO DE REINA DE SOFIA"라고 명명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의 현대 화가등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대작'게르니카'를 비롯, 달리, 미로, 후안 그리스 등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현대화가들의 작품들이 소장되어있다.3000점 이상의 회화, 400점이상의 조각, 9000점이상의 조형작품과 그래픽.

소피아 미술관 안내 34.91.467.5062 10:00 AM ~9:00 PM  MON & WED~SAT, 10:00 AM ~2:30 PM SUN .  1 JAN, 24, 25,31 DEC & SOME PUBLICS HOLS  (FREE OF CHARGE ON SUN

피카소 게르니카(1937)

1937년도 스페인 내란중 북부 바스크지방의 게르니카 마을 주민이 5천명 중 1654명이 죽고 889명이 부상을 당하는 전쟁에의 노여움과 생명의 존귀함을 전세계에 호소한 작품으로 당시의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작품. 1981년 10월 25일 (피카소 탄생 100주년)공개. 피카소의 유언에 따라 프랑코총통이 죽은 후에 마드리드로 가져오게되는데 그 전까지는 뉴욕 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있었다.


티센 미술관(Thyssen-bornemisza)

티센 가문에 의해 수집되어진 개인 소장 미술관이었으나1973년부터 국립미술관으로 승격되었다.

19세기 초의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써 외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1970년부터
1975년까지 내부 개축수리를 해서지금의 미술관으로 건축되었다. 정면의 프라도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현대미술관과 함께 마드리드 3대미술관으로 꼽는다. 총 49실의 상설전시장과 함께 특별전시장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약 800여점에 이르는 작품들이 중세 미술에서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19세기 인상주의를 거쳐 현대의 큐비즘,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이 역사시대순으로 전시되어있다.

콜렉션중에는 국외화가로 DUCCIO, VAN EYOK, MENLING, 루벤스, 카라바이오, 틴토레토,티지아노, 람브란트, 블레이크, 마네, 모네, 피사로, 르노와르, 반고호, 칸딘스키, 마티스, 몬드리안, 샤갈등의 작품이 있고, 국내 스페인화가로는 엘그레고, 리베라, 스루바란, 벨라스케스, 달리, 미로, 피카소등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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