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약 2만 5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에서 구석기 시대의
인류최고 회화가 발견됨에 따라 이 시기부터 선사시대의문명이 열렸다고 본다.



고대 사회
이베리아의 원주민은 유럽에서 내려온 켈트족, 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베로족등이 내륙에 살고 있었다.
반도 남부로의 안달루시아 지역쪽에 가장 많은인구가 밀집해있었는데 이들은 파르테시오족으로써 다른 지역보다 먼저 지중해 연안의 타민족들과의 접촉이 잦아 통상활동을활발히 전개했다.
이베리아 반도에 타민족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기원전 1200년경의 페니키아인들이다. 타민족에 비해 당시 항해술이 발달했던 그들은 북부 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 남부지방의 교역을 장악했다. 뒤이어 들어온 그리스인들이 반도의 동북부에서 식민활동을 하다가 페니키아에서 주도권을 빼앗은 카르타고와 충돌했다. 타민족들의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식민활동은 아직 원시적인 생활에 있었던 반도 주민들에게 경제,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미치는데 특히광산개발, 화폐사용, 농경기술등을 전파했다.

로마의 이베리아 정복시대
3차에 걸친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에 승리한 로마는 이베리아 반도를 약 5세기 동안 통치했다.
이 기간동안에 문자, 철학, 종교등 로마의 영향력을 이베리아 전지역에 확산, 기존의 사회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른 바, 이베리아 반도의 로마화이다.

게르만 민족의 이베리아 정복시대(서고트 왕국시대)
서로마제국의 멸망,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함께 서고트족이 남서쪽으로 내려와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하면서 서서히 그 지배지역을 확대해나가는데 이들은 300년간 통치했다. 아리우스교를 신봉했던 고트족과 카톨릭의 반도주민 및 로마인들과의 종교적 불화는 후에 톨레도의 제 3차 종교회의(589년)에서 레카르도왕이 스스로 카톨릭으로 개종함으로써 종교적 통일을 이룩했다.
7C경 성직자들의 부패, 패권싸움, 경제적 불안, 페스트 만연등으로 사회불안이가중되고 결국, 지중해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온 이슬람족에 의해 밀려나게된다

이슬람정복시대와 레꽁끼스타(국토 재회복운동)
7~8C경 지중해를 중심으로 거대한 사라센 제국을 이룩한 이슬람족의 이베리아 반도지배는 711년부터 크리스챤들에 의한 레꽁끼스타(국토 재회복운동)가 끝나는 1492년까지 약 8C간 계속되었다. 유대인, 크리스챤, 이슬람의 세 민족과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이 기간에는 수학, 천문학, 역학, 번역학등의 발전을 가져왔고 특히 이슬람이 남긴 건축술과 장식의 아름다움은 코르도바의 메스키타(회교사원),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등에서 엿 볼 수 있다.
한편, 북부 아스투리아지방 꼬바동가에서의 전투에서는 최초로 기독교들이 승리를 하면서(722년) 무어족들을 남쪽으로 격퇴시켰고, 이는 곧 기독교들의 국토재회복운동으로 이어졌다. 11C의 알퐁소 6세의 톨레도 탈환, 엘시드장군의 발렌시아 탈환, 13C 성훼르난도 왕에 의한 코르도바 회복을 계속하며, 결국 1492년 카톨릭 왕조(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의 훼르난도왕)에 의해 그라나다의 마지막 이슬람 제국인 나자리 왕국을 항복시키고 약 700년을 걸친 국토 재회복운동을 완성한다.

신대륙 발견
1492년 레꽁키스타를 끝내면서 동시에 획기적인 세계 지리상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이다.
스페인의 카톨릭 왕조의 후원을 받고 떠난 콜롬부스는 인도를 향해했고, 도착한 곳은 바로 지금의 서인도제도라고하는 지역이다. 이것을 계기로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의 거대한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고 해양산업에 박차를 가하게된다.


제국의 시대(16C~17C)
이사벨라 여왕->카를로스 5세 ->펠리페 2세에 이르는 1세기 간에 걸치는 스페인은 "해가 지지 않는 대스페인제국"이라고 할 만큼 거대한 식민지를 갖게되는 데 중남미를 비롯, 아시아에서의 괌, 사이판, 필리핀 그리고 이웃의 포르투갈까지 장악하면서 명실상부한 유럽최강국이된다. 그러나 펠리페 2세때 최절정에 달했던 스페인국력은 펠리페 3세때부터 내정에 등한하고 취향주의로 흘렀다. 무기력한 펠리페 4세를 지나면서 경제불황이 겹치고, 해양권을 상실, 국력의 약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문화예술적인 면에서는 황금시대를 이루는 시기이기도 하여 갈멜수도원의 창시자인 산타 데레사, 십자의 성요한 등은 신비주의 문학을 꽃피웠고 불후의 명작 '동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있었다.
건축과 조각에서도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이루면서 스페인 특유의 '에레라 양식'등이 선을 보였다.
회화에의 엘그레꼬는 톨레도와 인연을 맺으면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부르봉 왕가시대
카를로스 2세가 후손없이 사망하자 독일의 합스부르그가와 프랑스의 부르봉왕가의 왕위계승전쟁이 시작되고 결과는 부르봉왕가의 승리로 돌아가 1700년도에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가 즉위하면서 부르봉왕가의 통치가 시작된다.
프랑스는 왕위계승전쟁에서는 승리했으나 국제적 이해관계에 끼어든 영국에게 1714년 유트리트조약에 의해 스페인 남부의 지브롤터해협을 양도하게된다.


나폴레옹군대 침입과 독립전쟁
180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스페인 침입은 스페인 전지역에서의 저항을 가져왔다.
곳곳에서 민중들의 항거운동이 일어나 프랑스 정규군들과 충돌하며 나폴레옹의 작전계획에 차질을 빚어냈고, 특히 왕실가족들을 속여 납치하고, 유배시키는 등으로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시민의 봉기가 있었는데 (마드리드 5월2일의 항거운동을 그린 고야의 그림이 유명), 프랑스군의 무자비한 진압은 더욱 분노를 자아내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뻗어나갔다. 독립전쟁중 가장 큰 성과를 거둔 바이렌 전투는 스페인 국민에게는 커다란 용기가 되었다.
영국의 웰링턴장군의 승리와 러시아에서의 나폴레옹 군대의 패전은 프랑스군의 결정적인 위기를 맞게하고 결국 1814년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스페인에서의
'게릴라전 병법'은 스페인에서 기원된 것으로 소수인원으로 이루어져 각 종 전투에서 사용되는 병법.

시민전쟁과 프랑코 총통시대
1936년부터 1939년에 걸쳐 치른 스페인 내란은 근본적으로 같은동포들끼리의 이념전쟁이었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정부와 프랑코장군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의 멜리아 (MELIA)에서 일어난 반란군(국민군)은 독일과 이태리의 지원을 받았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고까지 한 이 전쟁에서 독일은 최신 공군력을 발휘하여 국민군 승리의 요인이되었다. 스페인 내란의 끝난 4개월 후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스페인은 중립을 선언하여 내란때 도와주었던 독일과 미묘한 관계가 되었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프랑코 정권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수년간에 걸쳐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어야했다.
1955년 유엔가입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조금씩 회복해갔다. 하지만 1975년 프랑코사망까지 약 40년간은 일인군독재기간으로 언론집회 등의 자유가 억압된 시대였다.
이 시대는 피카소, 까잘스, 로르카 등의 화가, 문인들의 반독재활동이 두드러졌고 또한 그들은 억압받는 민중을 대변했던 개혁민주화의 투사들이기도했다

오늘날의 스페인
1975년 프랑코의 사망으로 후안 카를로스 1세가 합법적으로 프랑코를 계승하고 수아레스 수상이 들어서면서 국민투표에의한 정치개혁법통과에 이어 신헌법제정, 언론자유등의 민주화조치가 진행되어갔다.
1982년 총선거에서 사회주의 노동당(PSOE)이 승리, 4임기 연속으로 정권을 이어갔으나 정부관리들의 부정,부패, 연이은 금융비리등의 사건으로 인해 1996년 중도 선거를 치루고 결과는 국민당(PP)의 승리로 돌아갔다.
2000년 봄에 치른 선거에서 국민당은 다시 앞승을 거두었다.
경제적으로는 90년 초의 고도 성장과 실업율을 내리면서 국민경제의 향상을 가져왔고 EU 초대국가로 유럽에서도 힘있는 국가로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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